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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뿔난 농민들…한미FTA "개정 말고 폐기를 논하라"

12월 1일 2차 공청회 앞서 농축산업계 의견 수렴
FTA 발효 5년간 엄청난 피해, 농업인들 “폐기” 촉구
정부 “불합리 요구에 끌려가지 않아…폐기도 가능”

있으나마나 세이프가드, 발동물량 현실화 요구도

미국산 쇠고기 국내 수입시장 점유율 1위
축산물, 가공식품, 과일·채소…가장 큰 타격
임정빈 “전술상 농업 건드릴 가능성 크다”
“쌀에 직접적인 협상 시도할 것” 예측 내놔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관련한 정부와 농민의 입장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농민들은 한미FTA 협상의 개정이 아닌 아예 폐기를 주장했다. 정부는 ‘농축산분야 추가 시장 개방은 없다’는 초기 입장을 재확인했지만 농민측은 “더 이상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며 협상 자체를 반대하고 나서 양측간 접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렸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농림축산식품부는 공동으로 지난 22일 서울 양재동 aT 센터에서 ‘한미 FTA 개정 관련 농축산업계 간담회’를 개최했다. 12월 1일 예정된 ‘한미FTA 개정 관련 2차 공청회’에 앞서 농축산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자리다. 이날 농축산업계 관계자를 중심으로 정부와 학계 등 약 200여명이 참석했다.


농축산물 무역수지적자 7조원
간담회는 한석호 농촌경제연구원 박사의 주제발표와 패널 토론 및 질의응답으로 진행됐다.


한 박사는 ‘한미FTA 농업부문 영향 및 시사점’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한미 FTA로 인해 농축산물 무역수지적자가 7조원에 이르렀다”며 “농산물의 추가시장 개방은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강성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와 김경규 농림축산식품부 기획조정실장은 “농축산 분야 추가 시장개방은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강 차관보는 “농업부문 ‘레드라인’ 수호가 한미FTA 개정 협상에 임하는 기본적인 방향”이라며 그 과정에서 관련 업계·단체와 긴밀히 소통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패널 토론에는 한두봉 고려대 교수(한국농업경제학회장)를 좌장으로, 농축산 업계에서 김홍길 전국한우협회 회장,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한민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실장, 조석진 낙농정책연구소 소장 등이 참석했다.


정부 측에서는 유명희 산업부 통상정책국장과 정일정 농림축산식품부 국제협력국장이 참여했다. 이밖에 최낙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안병일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등 11명이 토론에 함께했다.


농업계 대다수는 한미FTA에 따른 농축산업분야 피해가 상당하니 FTA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선 피해가 큰 축산분야를 중심으로 농업계에서 제기하는 사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농축산물 추가개방시 농촌 고사
농업계가 한미FTA 재협상을 결사반대하고 나선 것은 농업분야가 추가 개방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농민들은 FTA 재협상으로 농축산물 추가 개방이 이뤄진다면 농업농촌 관련 분야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FTA로 가장 타격이 큰 분야는 축산물과 가공식품, 과일·채소 등이었다. 한미FTA 발효 전 5년(2007∼2012년)과 후(2012∼2017년)를 비교했을 때 적자폭이 가장 크게 늘어난 분야가 축산물(7억6000만달러 증가)로 쇠고기 수입액은 124.3%, 돼지고기 수입액은 42.7% 늘어났다. 과일 중에서는 레몬이 265.7%, 체리가 226.3% 늘어났으며 포도와 자몽 수입액도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곡물은 옥수수 등 곡물 수입액이 감소하면서 전체 곡물 수입액이 26%(7억3200만달러) 감소했다.


특히 직격탄을 맞은 것은 한우, 낙농 등 축산분야다. 이 기간 쇠고기 수입량은 6만6000톤에서 12만1000톤으로 82.7%나 증가했다. 대표적인 낙농제품인 치즈 수입량은 1만6000톤에서 4만7000톤으로 192%나 늘었다. 한육우 자급률은 FTA 이행 1년 48.1%에서 이행 5년 후인 현재 39.0%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는 2017년 9월 기준 한국 내 수입시장 점유율 47.7%(12만2000톤)로 1위를 탈환했다.


김홍길 전국한우협회 회장은 “한미FTA 이후 한우 농가는 18만에서 8만으로 반토막이 났다”며 “24%의 관세가 남아있는 지금도 이 정도인데 관세가 없어지면 피해는 더 심각해진다. 한미FTA는 무조건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FTA의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관세 철폐율은 97.9%(품목 수 기준) 수준이다. 우리나라가 FTA를 체결한 53개국 중에서 시장개방 수준이 가장 높다. 쌀을 제외한 대부분 농축산물 시장이 미국에 개방됐고 수입량이 증가하면서 국내 농축산물 시장에서 국내 상품을 대체했다.


양국간 이익균형 관점서 불평등 수정해야
농축산업계는 한미FTA 폐기와 세이프가드의 실효성 제고를 주장했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산업부에서 통상전략을 제대로 연구하고 있는지 따져 물었다. 박 위원장은 “한미FTA 개정협상은 전반적인 미국의 통상전략을 보고 나서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정해야 한다”며 “그런데 농업을 지키냐 마느냐로 좁혀가고 있다. 농축산업계를 위로하는 간담회는 되겠지만 한국의 통상전략은 잘못돼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개정협상은 미국만이 공격·수비할 수 있는 불평등한 경기인데, 참여 자체가 수치스럽다”며 “12월 1일 공청회 취소하고 폐기를 논의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그는 “개정협상을 받아들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파면해야 한다”고 격하게 주장했다.
한민수 한농연 정책실장도 “개정협상을 원천 거부하든지, 아니면 양국간 이익균형 관점에서 불평등 조항의 수정을 당당히 요구하라”고 말했다.


최낙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폐기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양국 교역이 세계교역보다 빠르게 증가해 한미FTA가 교역확대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 연구위원은 “미국의 대외수입은 0.1% 감소했는데 대한국 수입은 5.3% 증가했다. 이는 FTA가 양국간 무역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며 “농업분야에서도 FTA 전반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석진 낙농정책연구소 소장은 “FTA 통해 양국간 무역에 긍정적 효과를 냈을지 모르지만 농업분야에만 일방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15년 후 관세 완전철폐시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지, 개구리를 천천히 삶아 죽이는 것과 같다”고 토로했다.


조 소장은 “낙농분야에서 치즈·분유 수입이 각각 208.8%, 1385% 늘었다. 분유 TRQ가 5000톤에 관세철폐시까지 매년 복리로 3%씩 의무수입물량을 늘려가는데, 이것이 관세철폐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라며 국내 생산기반을 유지할 수 있게끔 TRQ 배정방식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김홍길 한우협회 회장은 “세이프가드는 미국산 쇠고기 29만4000톤을 기준으로 발동되는데 지금 15만t이 들어와도 한우 농가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세이프가드가 제대로 발동돼야 한다”고 밝혔다.


안병일 고려대 교수는 “협정 체결 전 논문도 썼지만 막상 결과를 보니 한미FTA가 농업분야에 미친 피해가 예상보다 상당히 크다”며 “가격경쟁력과 품질 문제에만 집중하느라 소비자들의 선호도를 빠트렸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가격이 비싸서 못 사먹던 것을 한두 번 사 먹기 시작하면 가격으로 품질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인데, 가장 민감한 품목이 축산이다. 이 점을 간과해서 관세감축이 절반도 이행되지 않은 시점에 피해가 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FTA가 무역 확대 효과도 있겠지만 맛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이 쉽게 바꾸기도 어렵다. 축산은 이런 것들을 감안해 관세감축 피해와 효과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쌀 개방’ 카드 들이밀 수도
지난 8월과 9월 양국이 FTA 수정을 협의하면서 오간 내용은 ‘전략상 대외비’로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일부 농민단체들 사이에선 1차 협상 때 미국이 한국에게 농산물 관세철폐를 노골적으로 요구했고 쌀 개방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임정빈 서울대 교수는 “미국이 전술상 농업을 건드릴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임 교수는 “특히 쌀에 어떤 직접적인 협상을 시도할 것”이라며 “대미 쌀 수입량을 더 늘려달라든지 검역 관련한 요구가 있을 것이다. TRQ를 주고 현행 관세 유지는 큰 의미가 없다. 피해를 봤는데도 발동을 못하는 세이프가드도 현실적으로 끌어내리는 준비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방청석에서 질의한 전국쌀생산자협회 관계자는 “토론자들이 이 정도 농업계 피해를 반영했으면 정부는 FTA를 개정할 것인지 폐기할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하는데 개정쪽으로 이미 굳히고 나와서 간담회를 진행한다”고 성토했다.


이날 농축산업계 참석자들은 정부 측에 한미FTA 개정협상에 폐기 가능성도 포함돼 있느냐고 일제히 물었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국장은 “농업 부문 추가개방은 어렵다고 줄곧 표방해 왔다. 협상도 한 번 안 해 보고 폐기하기보다 협상을 통해 발전방안을 모색해 보고 이익의 균형을 갖출 수 있는지 일단 해 보는 게 필요하다”며 “미국이 불합리하고 일방적인 요구를 할 경우 끌려가지 않겠다. (한미 FTA) 폐기도 옵션 중 하나”라고 답변했다.


이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미국이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요구할 경우 한미 FTA가 깨지는 경우도 상정하느냐는 질문에 “폐기할 가능성도 포함된다”고 답변한 것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